How feasible is China’s Globalization (全球化 Quan Qiu Hua)?

Abstract: The article below is written in Korean (한글), followed by an extended summary in English. Some savvy observers point out that China is the country that has benefited the most economically from its pursuit of globalization among all nations in the world. Undoubtedly,
China has been rising by leaps and bounds economically and ilitarily. A genuinely globalized nation, however, respects other countries and minds and appropriates its images in the world.
Without ethical respectability, neither power nor utility will elicit respect from the global community. How a nation treats its people and its neighbors, however small and weak they may be, has become a measure of the nation’s respectability. In this respect, China has a long way to go. [Keywords: 도의적 책임 (ethical respectability); 세계화된 정치 (global governance); 맹목적/광신적 민족주의(hyper-nationalism or chauvinism); 무력(military power); 부(wealth)]

중국의 세계화는 어느정도나 가능한가?

차례

I. 경제에는 기적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II. 중국은 세계화를 추구함으로써, 경제적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얻은 나라

III. 무엇이 국가에 대한 존경심의 척도인가?

IV. 중국 사람들은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V. 반성적인 고통은 창조적인 힘의 원천

VI. 중국의 법 개념은 “의법치”(依法治, rule by law)

VII. 중국의 지성인들에게 묻는 필자의 질문

VIII. 독자 여러분들에게 묻는 필자의 질문

Extended Summary in English

 

 

 

I. 경제에는 기적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은 먼 길을 왔습니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1970 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경제 성장은 “기적적” (miraculous) 이라고 묘사해 왔읍니다. 그러나, 필자는, “경제에는 기적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중국 대학생들에게 강의했습니다. 필자의 눈에는, 중국의 소위 경제전문가들은 국내 총생산 (GDP) 의 성장에만 관심이 쏠려, “얼마나 많은 힘 없는 중국 사람들이, 소위 ‘기적적’ 고속 성장을 위해, 희생했는가?” 같은 질문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필자는, 중국 대학생들에게, 중국 경제에 관해 논의할 때, “For whom the bell tolls”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의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 라는 질문을 여러 번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의견을 말했다가는 큰 봉변을 당하는 것이 중국의 현실입니다. 이 어두운 중국의 현실에 관에서는, 다음 기회에 좀 더 철저하게 논의하기로 하고, 오늘은 많은 중국 젊은이가 갈망하는 세계화(globalization, 全球化 Quan Qiu Hua)와 이와 관련된 문제들에 관하여 필자의 의견을 나누고자 합니다.

 

 

II. 중국은 세계화를 추구함으로써, 경제적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얻은 나라

일부 정통한 관찰자들은 중국이 세계 모든 국가들 중에서, 세계화를 추구함으로써, 경제적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얻은 나라라고 지적합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중국은 거시(macro)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도약하고 있으므로 전 세계적으로 힘이 세지고 있습니다. 어떤 중국 전문가들은 (특히, 많은 중국 엘리트는) 중국이 현재의 “유일무이한 초강대국”인 미국과, 부(wealth)와 무력(military power)에서 동등한 위치에 도달할 날이 머지않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필자는 중국 교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습니다. “미국에 큰 내분(devastating internal discord)이 일어나기 전에는, 꿈도 꾸지 마세요.” 이러한 말은, 몇몇 극소수의 중국인들은 수긍하지만, 많은 중국의 “애국자”들을, 특히 “네티즌” (netizen)들을 격분시킵니다.

필자의 생각에는, 중국인들은 아직도, 중국의 정치 철학자이자 저명한 개혁주의자인 리앙치 차오(Liang Qi Chao, 梁启超, 양계초, 1873-1929)가 통탄한 “자존망대(自尊妄大, self-conceited megalomaniac tendency)”의 경향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중국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왔습니다: “중국의 현재, 혹은, 가까운 장래의 역량에 관한 내 생각이 틀리고, 당신들의 견해가 옳을 수도 있다. 설령 그렇다면, 중국인들은, 인간의 본성과 인간 가치에 관한 서구의 기본 전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담론을 강요할 수 있다. 또한,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도덕적 문제를 포함하는 세계화된 정치(global governance)에, 오늘날의 중국 사람들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과연, 중국인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가?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너무나 부정적이다”

필자는 중국의 지인들(acquaintances)과 중국 문제에 관심이 있는 세계시민들(global citizens)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습니다. 만약, 중국인들이 중국의 존재와 영향력이 세계적 혹은 “글로벌”(global)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들은 세계를 인식하고, 세계 속의 중국 이미지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와 아울러, 중국의 세계에 대한 인식은, 세계 국가의 네트워크(network)의 구조와 운영, 그리고 네트워크에서 중국의 위치와 역할을 이해해야 합니다.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는 국가는 스스로를 인식해야 합니다. 국가의 자각은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역사적 자기 이해에 의해 조명된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을 포함해야 합니다. 그러한 자각은 사실적(factual)일 뿐만 아니라 평가적(evaluative)이고 능동적 (conative) 이어야 합니다.

한 국가의 세계화의 필수 조건은 자존심(self-respect)입니다. 그러나 한 국가의 자존심은 맹목적/광신적 민족주의(hyper-nationalism or chauvinism)나 애국심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리앙 치차오(梁启超)가 개탄한, 중국 사람들의 자존망대(自尊妄大)의 경향, 즉,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며,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이 중국에 의해 발명되었거나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자만심, 자기 영광의 찬양”은 세계 평화에 큰 위협이 되지, 절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한 세기 전, 중국인들이 추앙하는 이 진보 혁신주의자가, 세계 평화에 해롭다고 여긴 중국의 우월주의와 자기도취증 (narcissism)을 개탄한 것을, 오늘날의 세계화된 환경에서 중국 사람들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개탄은, 오늘날 미국을 망치고 있는 미국인들, 즉, 미국을 백인우월주의와 자기도취에 빠진 제국으로 만든 이들의 이념적 후손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우월주의와 자기도취증은 다른 나라 사람들, 훨씬 작은 이웃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자기 방종(self-indulgence)을 반영합니다. 한 국가의 진정한 자존심은 자기 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가치에 대한 반성적이고 비판적인 이해입니다. 그러한 반사성(reflectivity)은 자기 문화에 대한 식별과 몰입뿐만 아니라, 객관화가 필요합니다. 신비로운 자기 영광에 탐닉하는 국가는 더 강한 군사력을 동반하는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지만, 세계 국가 공동체의 안녕과 복리에 기여하는 구성원이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세계화된 국가는 다른 나라를 존중하고, 세계 속에서의 자기 나라 이미지에 신경을 씁니다. 한 나라는 강력할 수 있고, 따라서 다른 나라들이 두려워하거나 의존할 수 있습니다. 부유한 국가는, 무역 동반자 또는 외국인 직접 투자를 위한 장소로 선호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윤리적 존경이 없다면, 권력이나 효용성은 세계 공동체로부터 존경을 끌어내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초강대국이라고 불리는 미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와 아울러 한 가지 중국의 “네티즌”(netizen)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서양 사람들의, 동북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무지(ignorance)에서 발생한 잘못된표현(misnomer), “Chinese New Year”를 마치 자랑처럼 얼싸안는 짓은, 자존심(self-respect)이 있는 중국인들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필자의 중국인 친구는, 최근 다음과 같이 개탄했습니다: “중국의 네티즌들이, 한국 김치, 한복은 중국 문화의 산물인데, 한국 사람들이 모방했다고 우길 때마다, 나는 쥐구멍 속으로 숨고 싶었다…. 수치를 모르는 이 인간들을 어떻게 全球化(Quan Qiu Hua, 세계화)시키지?”

 

 

III. 무엇이 국가에 대한 존경심의 척도인가?

의심할 여지 없이 국가에 대한 존경의 기준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다양합니다. 그러나 보편적인 것이 하나 있습니다 : 그 국가가 자기 나라 국민과 작고 약한 이웃 나라들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그 국가에 대한 존경심의 척도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21 세기에는, 자기 나라 국민뿐 만 아니라, 이웃 나라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그 국가에 대한 존경심의 척도가 되었습니다.

세계 시민들의 눈에는, 중국은, 신장, 티베트, 내몽고에서 인종 청소와 문화적, 인구학적 “대량 말살”을 추진하는 민족국가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이러한 심각한 인권 침해는 한 두 세대 동안 장기간에 걸쳐 시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가 중국 학생들에게 계속 묻는 말은 (그들이 기꺼이 듣고 싶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 “많은 세계 시민들이, 초권위주의 경찰국가와 한(汉)족 민족주의 국가로 전락한 중국을 신뢰하지도 않고, 윤리적으로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 놀랍습니까?”

 

 

IV. 중국 사람들은,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중국 사람들은,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소수의 지식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국 본토 사람들 사이에서 “중국- 러시아 파트너십에 대한 강력한 지지와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가 있습니다.”라고 미국의 중국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이러한 지지는 주로 장기간의 정치적 통제와 선전에 의해 유발된, 세계 (특히 중국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무지 또는 오해의 결과인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 시민들의 눈에는, 중국 정치 지도자들과 언론이, 독립된 이웃 나라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잔인한 공격에 대한 푸틴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크라이나는 중국 군대의 현대화를 도왔던 나라입니다. 중국 최초의 항공 모함, 해군 대미사일 레이더 기술 및 첨단 제트 엔진을 포함하여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중요한 군사 기술을, 우크라이나가 수년간 중국에 공급했다는 것은,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 시민들의 눈에는, 중국 정치 지도자들과 언론이, 독립된 이웃 나라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잔인한 공격에 대한 푸틴의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다른 국가들에게 다음과 같은 경고를 줍니다. 즉, 중국정치인들이나 사업가들이 외국인들을 다룰 때 자주 사용하기를 좋아하는 두 개의 네 글자 표현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해야한다는 것입니다 — Yi Di Si Zhi (易地思之, 역지사지 )와 Wu Xin Bu Li (無信不立, 무신불립). 전자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상황을 바라본다”로, 후자는 “신뢰가 없으면 아무것도 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신뢰감이 넘치는 말을 해놓고, 실제 행동은 정반대인 개인, 회사, 국가는 상대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만, 어쩔 수 없이 상대해야 할 때는 현명한 사전, 사후 준비를 해야 됩니다. 역사적으로, 순진한 한국사람들이 (예를 들어, 조선의 양반들이) 잘 써온, “설마, 공자/맹자의 나라 사람들이 그럴 리가….”라는 식의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크게 당합니다.

 

 

V. 반성적인 고통은 창조적인 힘의 원천

필자의 눈에는, 중국은 과학 지식, 기술 및 군사력을 포함한 많은 분야에서 (AI 개발에 서는미국과 거의 동등하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미국보다 훨씬 뒤처져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과의 동등성을 달성하기 위해 서구의 전문지식과 기술을 계속 수입하고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중국은 서구의 정치 및 경제 제도를 (필요한 수정과 함께) 채택해야 할 것이며, 그 결과로 초래되어야 하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오늘날의 중국 지배 엘리트들에게에게 이상적인 상황은 아닐지라도 실용적인 필요성입니다.

필자는, 오늘의 중국에게는 다음과 같은 역설이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적 정치 (global governance)에서, 세계를 형성하는 영향력을 얻기 위해서는, 중국은 이후 어느 정도 서구 모델적 체제에 종속되어야 합니다. 집권 중국 공산당 엘리트들은 중국이 그렇게 함으로써, 중국의 혼과 정체성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그러나 반성적인 고통은 창조적인 힘의 원천입니다.

1989 년 5 월 / 6 월부터 2020 년 1 월까지 필자는 매년 중국 본토를 방문하여 대학에서 가르치고 컨퍼런스(conference) 또는 세미나(seminar)에 참석하며 중국 사업가, 학자 및 학생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중국 동료들과 학생들이 자주 제기하는 질문은 중국의 급속한 세계화 (Quan Qiu Hua, 全球化)에 관한 것입니다. 필자는, “중국 교수/대학생들이 진정한 글로벌 시야와 관점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습니다.

방문 교수로 중국에서 가르치면서 필자가 주목한 한 가지는, 많은 중국 학생들이 언어, 철학, 종교, 예술, 경제, 수학, 철학, 자연 과학, 비교 정치, 국제법, 외교 정책 등에서, 세계가 제공하는 모든 지식과 지혜의 원천에 대하여, 제한 없이 접근하기를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세계화된 세계시민(global citizen)이 되고 싶어합니다. 마찬가지로, 많은 대학교육자들과 학생들은 인간의 사상과 가치에 대한 세계적인 대화에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중국의 문화 유산과 오늘날의 평가에 대해, 전 세계인들과 토론하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또한 국가들의 자기도취증을 극복하고 “시야의 융합” (fusion of horizons)을 구축하기 위해, 상호 존중을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 사상과 가치의 진정한 세계화에 반대하는 많은 장애물에 직면해 있습니다. 정치적 감시에 활용되는 인공 지능 및 안면 인식 기술 외에도, 金盾 工程 (Jīn Dùn Gōng Chéng, Golden Shield Project)와 防火 长城 Fánghuǒ Chángchéng, Great Firewall)이 바로 그 수단입니다. 4 년 전에 일어난 다음 사건은 하나의 예에 불과합니다. 2022 년 10 월 중국 제 20 차 공산당 대회가 열리기 3 일 전, 주황색 점프수트와 노란색 안전모를 쓴 한 남성이 베이징 북동부의 고속도로 고가도로에서 두 개의 대형 현수막을 펼쳤습니다. 이 현수막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습니다: “봉쇄하지 말라.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 우리는 먹어야 산다.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 거짓말하지 말라.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원한다. 문화 혁명은 필요 없다. 우리는 개혁을 원한다. 최고 지도자도 필요 없다. 우리는 투표하고 싶다.” 몇 분 안에 경찰은 그를 둘러싸고 그의 현수막을 찢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 후, 이 용감한 시위자의 행동은 사라졌습니다. 중국 정부의 알고리즘(algorithm)은, 마치 일어난 적이 없는 것처럼 이 사건에 대한 모든 언급을 지웠읍니다. 그 결과, 이 시위는 10 월 16 일부터 10 월 22 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대회 참가자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 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엘리자베스 린치(Elizabeth M. Lynch), “Cracks in the Firewall,” Commonweal, 2023 년 1 월, 14-15 쪽을 참조하십시오.)

중국은 오랜 역사를 통해 유교, 도교, (대승) 불교와 같은 심오한 사상 체계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는, 오늘날의 중국은, 시대착오적 정치 체제 밑에서, 풍부한 문화적 유산을 포기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국 경제의 깊은 구조적 문제를 악화시키는, (개혁 없이는) 황량한 경제 전망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중국 사회에 만연한 배금주의(mammonism)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필자의 중국 학생들은, 자기들의 조국 중국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변화의 도가니 속에서 세계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정치체제를, 중국 시민들이 스스로 무너뜨리지 않으면, 그런 희망은 없다”는 필자의 생각에, 이들은 실망합니다. 그러나 필자는, 민본정치(people-based politics)를 주장한, 중국 사람들의 제 2 성인(Second Sage) 맹자 (Mencius, BCE 372-289)는 동의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중국 정부가 세운, 500 여 개의 공자학원(Confucius Institute)은 중국의 지배 엘리트들이, 전통적 유산을 위장하고 있는 하나의 예에 불과합니다. 필자의 눈에는, 중국은 정치경제의 수혜계급인 엘리트들 (elites)이 아닌 일반 시민들의 불만을 인간 감시망과 AI 를 포함한 선진 기술로 억압하면서, 지휘 통제주의로 계속 더 깊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VI. 중국의 법 개념은 “의법치”(依法治, rule by law)

“법치”(法治, rule of law)에는 세 가지 개념이 포함됩니다:

(i) 독단적인 권력의 영향에 반대하는 법의 우위;

(ii)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며, 어떤 개인이나 정당도, 그 나라의 법 위에 있지 않다;

(iii) 헌법의 법은 시민의 권리의 결과이다. 그러나 , 중국의 법 개념은, “법치”(法治, rule of law)가 아니고, “의법치”(依法治, rule by law)입니다:

(i) 통치자는 (또는 집권당은) 그의 (집권당의) 선호에 따라 그리고 그가 (집권당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자의적으로 시민들을 처벌하거나 보상할 수 있고;

(ii) 통치자는 항상 법 위에 있고, 법을 초월하기 때문에, 통치자는 자신의 법에 결코 복종하지 않는다;

(iii) 통치자는 법의 원천이다. 통치자(통치당)는 명령으로 새로운 법을 제정하고 오래된 법을 폐지할 수 있다. 중국의 정치조직 형태인 후자의 법 개념은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이 구상한, 시민 사회의 완전한 파괴와, 모든 사람들을 대규모 강제 수용소의 수감자로나, 경찰 정보원으로 만드는 제도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중국공산당이 지배해온 중국의 제도는, 2200 년 전, Qin Shi Huang (秦始皇)시절에 완성된, Legalist ( 法家) 제도의 현대판에 불과합니다.

 

 

VII. 중국의 지성인들에게 묻는 필자의 질문

중국의 지성인들에게, 구체적으로, 계속 묻는 필자의 질문들은 다음 네 가지 입니다.

  1. 오늘날 중국의 전통적 유산을 파산시키고 있는, 중국 사회에 만연된 물신주의 (mammonism)를 계속 용납할 것인가?
  2. 중국의 경제 성장이 둔화된다면, 중국 지도자들은 대만의 군사적 침공, 혹은 한반도에서 무력 충돌 조장과 같은 위험을 감수하여, 중국 국민들의 관심을 분산시킬 것인가?
  3. 현재의 통치자는 마오쩌둥(毛澤東)이 존경했던 진시황(秦始皇) 스타일의 전체주의를 영속시키거나 완성하려고 시도할 것인가?
  4. 위의 Q3 과 밀접하게 관련된 질문은 “법치”(rule of law)와 “의법치”(rule by law)에 관한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국가의 통치 체제를 “의법치” 국가에서 “법치”국가로 전환할 의향이 있는가?

 

 

VIII. 독자 여러분들에게 묻는 필자의 질문

독자 여러분들은, 중국인들이 국가의 통치 체제를 “의법치” 국가에서 “법치”국가로 전환할 의향이 있다고 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긍정적이라면, 어떻게 그들이 그러한 체제를 달성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들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 그가 쓴 책, 1984 에 묘사한 것들이, 어린애 장난인 것처럼 보이는, 오늘의 중국 공산당정치 체제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투쟁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들은, 21 세기에 살고 있는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 시민들, 특히 중국의 이웃으로 살아야 한다는 지리적 운명 속에 살고 있는 나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중요한 질문들입니다. [끝]

 

 

Extended Summary in English for 중국의 세계화 (China’s Globalization)

By Yeomin Yoon

Some savvy observers point out that China is the country that has benefited the most economically from its pursuit of globalization among all nations in the world. Undoubtedly, China has been rising by leaps and bounds economically and militarily, so its power has been growing globally. Many Chinese elites believe it is not a remote prospect for China to achieve parity of power and wealth with the US, the current “one and only superpower.” Naturally, China can impose a discourse questioning the basic Western premises about human nature and human values. If so, it is about time that China should pay close attention to global governance issues, which are not confined to economic, political, and military matters but also include moral ones.

A question my Chinese friends and former students often ask concerns China’s rapid globalization (Quan Qiu Hua, 全球化): “Do you think that Chinese university faculty and students are gaining a real global perspective in their education?” My response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 A genuinely globalized nation respects other countries and minds and appropriates its images in the world. Without ethical respectability, neither power nor utility will elicit respect from the global community. How a nation treats its people and its neighbors, however small and weak they may be, has become a measure of the nation’s respectability. In this respect, China has a long way to go.

● China is still far behind the US in many areas, including scientific knowledge, technologies, and military power, although some Chinese claim that China’s AI development level almost matches America. Therefore, China must continue importing and utilizing Western expertise and technology to achieve parity with the US. Concomitantly, China will have to adopt, with necessary modifications, Western political and economic institutions, with preparedness to cope with social and cultural changes that must result. It is a pragmatic necessity. There is a paradox for China. China should subject itself to a modernization regime after the Western model to gain world-shaping clout in global governance. However, the ruling Chinese Communist Party elites seem concerned that China may lose its perceived soul and identity in so doing. However, reflective suffering can become a source of creative forces. Looking forward, I raise four questions:

  1. Will China continue abandoning its rich cultural legacy and endorse mammonism rampant in today’s mainland Chinese society, notwithstanding China’s unfavorable and deep structural problems?

  2. If China’s robust economic growth fades, will its leaders become more inclined to take risks, such as a military invasion of Taiwan or creating military tensions in the Korean Peninsula, to distract the Chinese people’s attention?

  3. Will China’s ruling power elites continue or move even deeper into command-and-control statism, suppressing, with advanced technology, the discontent that may arise among ordinary people? More specifically, will the current ruler perpetuate, or attempt to perfect, a Qin Shi Huang (秦始皇)-style totalitarianism that Mao Zedong(毛澤東) admired?


    Today’s rule of law calls for three concepts:

(i) Supremacy of law as opposed to the influence of arbitrary power.

(ii) Everyone is equal before the law, and no person or political party is above the law of the land.

(iii) The law of the constitution is the consequence of the rights of persons. In contrast, China’s conception of law is rule by law, not rule of law:

In contrast, China’s conception of law is rule by law, not rule of law:

(i) The ruler (or ruling party) can punish or reward his citizens at his (or its) whim and as he (or it) deems appropriate.

(ii) The ruler (or ruling party) is not subject to his (its) own law because the ruler (ruling party) is above and beyond the law.

(iii) The ruler (or ruling party) is the source of law – the ruler (or ruling party) can make new laws and repeal old laws by fiat. China’s contemporary political form is nothing but a modern adaptation of the Legalist (法家) system established by Emperor Qin Shi Huang (秦始皇) more than two thousand years ago. It is very close to the blueprint conceived by Hitler, Stalin, and Mao Zedong (who was an avid admirer of Qin Shi Huang) – the destruction of civil society and the transformation of all the people into inmates of a massive concentration camp and police informers.

Are the Chinese people willing to transform their country’s governance system from the “rule by law” to the “rule of law”? If the answer were affirmative, how would they achieve such a transformation of governance? And how long would they have to struggle in a political system that appears as if George Orwell’s 1984 were a child’s play? These are the crucial questions in the minds of peace-loving global citizens, especially those living in smaller countries geographically condemned to live as China’s neighbors.

Yeomin Yoon

Professor Emeritus, Seton Hall University
Opinion Columnist, Diasp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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